예전에 사회인 야구를 하다가 나름 멋지게 슬라이딩을 했다. 모래에 발이 박힌 채 미끄러졌고 그 뒤로 절뚝절뚝.. 그날 야구는 절뚝이며 어찌저찌 끝까지 했다. 쩔뚝이 주제에 그날 성적도 나름 괜찮았다. 오른발목을 삐끗했는데 차를 몰고 집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았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눈 뜨고 출근 준비를 하려 바닥에 내딛는 순간 '뜨헉'소리가 절로 나며 주저앉았다. 그냥 지끈거렸던 발목이 퉁퉁 부어있었다. 급히 병가를 내고 근처 재활의학과를 가서 엑스레이를 먼저 찍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고 공기압치료, 저주파 치료, 전기치료, 냉찜질,, 따위를 했던 것 같다. 몇 번의 인대 주사를 맞기도 했다. 그래도 호전되지 않아 정밀검사를 위해 발목 MRI 촬영도 했다. 인대가 뭉치고 떡지고.. 제대로 나오지 않아 한 달 후 다시 찍어보잔다.
그 여름은 깁스와 목발 둘과 함께 지하철 출퇴근을 했다. 깁스+목발을 해도 장애인 자리에 끝까지 기대서서 비켜주지 않는 인간들이 젊거나 나이 들었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상관없이 생각보다 많았다. 난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아무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난 이때, 발목을 다친 초반에 내 발목에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다. 다친 그날 야구를 마저 하지 말걸, 다른 병원을 여기저기 다녀보며 더 신경을 썼으면 지금보단 내 발목이 건강하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별 효력이 없는 치료를 받으며 시간은 8개월가량 그렇게 흘렀고 내 발목은 통원치료의 효과보다는 자연치유로 나았던 것 같았다.
그러다 지인의 조언으로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아보기로 했고 인터넷 검색 후 가까운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원장 선생님의 "독일 치료기", "1억원 짜리 장비" 이 두 마디를 강조하셨었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 네네 하고 반신반의로 그렇게 첫 치료를 받았다.
효과는 대단히 좋았다!
충격파 치료를 처음 받는 그 순간엔 너무너무 아팠지만 그 순간이 지나니 다음날부터 효과가 있었고 그 뒤로 2주에 한 번씩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몇 번을 치료받으며 내 발목이 점점 좋아짐을 느끼다 어느 순간부터 체외충격파 치료에 효과를 느끼지 못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내 발목이 충격파에 대해 적응을 해서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건지 뭐가 원인인지를 생각해봤다. 다음 치료 때 유심히 보니 치료에 사용되는 장비가 바뀌어있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물어봤다.
처음 치료받을 때부터 (위에 사진처럼 요렇게 생긴) 저 독일녀석으로 치료를 받을 때는 효과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프기만 하고 나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했더니 최근부터 나에게 쓰던 장비는 '국산 장비'란다. 국산 장비도 요즘 좋다길래 아 그래요 하곤 그날은 국산 장비로 치료를 받았다. 며칠 지나고 나는 장비 탓이란 확신이 들었다. 치료 초반엔 분명 며칠 지날수록 발목이 좋아졌는데 지금 이건 치료를 받은 건지 만 건지 싶었다. 그래서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그 녀석의 정체를.. 키워드는 독일 germany, 충격파 치료 shockwave therapy 두 단어를 구글링 하고 내가 기억하고 있던 장비의 모습이 있나 뒤적였는데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내가 처음 치료를 받았던 저 독일녀석의 진짜 이름은 Piezoson 100 이었고 2000년도에 Richard Wolf라는 독일회사에서 출시된, 바다를 건너온 녀석이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큰 회사였다. 충격파(Shock wave)를 이용해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기(발기부전도 치료할 수 있다고 함. 물론 난 상관없음.) 뿐만 아니라 수술실에 사용되는 여러 기구들을 만드는, 설립된 지 꽤 오래된 전통 있는 회사였다. 역시 기계는 독일이 잘 만드나 싶었다. 내가 처음 만났던 체외충격파 치료기인 Piezoson 100 이 녀석은 단종된 지 오래고 요즘엔 Piezowave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단다. Piezowave는 1도 있고 2도 있는데, 뭐 20년 전 장비도 효과 있었는데 요즘 나온 건 효과가 당연히 더 좋겠지?
2주 뒤 치료를 위해 재방문을 했고, 국산말고 저 독일걸루 해주세요~ 하니 의사 선생님이 알겠단다. 장비를 껐다 켰다를 몇 번 하시더니 장비가 안 켜진다고 하시네? 그래서 아 네 다음에 올게요 하고 병원을 나왔다. 인터넷을 통해 저 녀석으로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갔고 지금까지 잘 치료받으며 다니고 있다. 좋은 의사선생님을 선택하는 것 만큼 본인의 몸을 치료해 줄 의료기기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뿐인 자기 몸 치료에 쓰이는 의료기기이니 책임과 선택은 본인의 몫.
처음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았던 병원의 독일녀석은 이젠 고쳐졌는지 모르겠다. 그 덕에 체외충격파 치료의 효과를 보았고 내 발목은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였지만 조금씩 치료되었다. 요즘에도 드문드문 발목이 아플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내가 치료받고 싶은 녀석이 있는 병원을 찾아간다.
수십년 전에 고국을 떠나 바다를 건너왔던 그 녀석은,
진실된 체외충격파 치료의 효과를 나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 순간까지 나를 만나기 위해,
고장 나지 않은 채 마지막 전선을 휘어잡고 힘겹게 버티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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